절친한 친구였던 김려(金鑢 : 1766~1822)가 편찬한 〈담정총서 潭庭叢書〉에 실려 있다. 신분제의 속박으로 인해 양반의 자제인 심생과 중인층 처녀의 사랑이 비극적으로 끝나게 된다는 내용을 애틋하게 그렸다.
어느날 심생이 운종가(雲從街)에서 임금의 행차를 구경하고 돌아오다가 계집종에게 업혀가는 한 여자를 보았다. 아름다움에 반해 따라가 보니 중인의 딸이었다. 사랑하는 마음을 억누를 수가 없어, 밤마다 그녀의 집 담을 넘어가기를 20일 동안 계속했으나 좀처럼 만날 수가 없었다. 결국 심생의 진실된 사랑을 안 처녀는 심생을 자신의 방으로 불러들이고 자신의 부모를 설득시킨 뒤, 동침했다. 그뒤 심생은 밤마다 그녀를 찾았고 이를 눈치챈 심생의 부모는 절에 들어가 공부하도록 했다. 부모의 명을 거스를 수가 없어 절방에서 글공부를 하던 중 그녀가 보낸 유서(遺書)를 받았다. 자신의 처지를 한탄하는 내용이 담겨 있는 편지를 읽고 심생도 슬픔에 싸여 일찍 죽고 만다는 내용이다.
신분의 차이 때문에 사랑을 이루지 못한다는 이야기는 많이 있으나 작품 결말에 그려진 심생의 죽음은 인상적이다. 또 주인공 여자는 춘정(春情)에 들뜬 심생을 슬기롭게 거절하기도 하고, 자신의 뚜렷한 주관으로 사랑을 받아들이기도 하며, 신분 때문에 겪은 불우한 현실을 토로함으로써 자신도 떳떳한 개체적(個體的) 인간임을 선언하기도 한다. 이같이 자신의 삶에 적극적이면서도 강한 의지를 보이는 여성상은 조선 후기의 새로운 사회상을 짙게 반영하는 것이다. 실제로 이옥은 〈이언 俚諺〉에서 당대 여성의 섬세한 감정을 그려내고 있는데 〈포호처전 捕虎妻傳〉에 나오는 숯장사의 아내에게서도 이러한 면을 발견할 수 있다. 이 작품은 〈이생규장전 李生窺墻傳〉 또는 〈춘향전〉을 연결시켜주는 문학사적 의의를 갖는다는 평가를 받기도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