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인공인 '나'는 10여 일 전에 아무런 말도 없이 집을 나간 안해(아내) 생각을 하며, 지난 1년 동안 안해와의 썩어 문드러진 생활을 기억해 낸다. 다방을 경영한 지 한 달이 못 되어 안해가 '나'를 따라 올라오자 '나'는 전부터 의가 맞지 않던 늙은 어머니 그리고 누이와 아주 의를 끊다시피 하고 어두컴컴한 다방 속에서 안해와 둘이 쳐박혀 지내고 있었는데, 어느 날 안해가 돌연 자취를 감춰 버렸다. 나는 안해를 부정하게 생각하며 다방을 처분하지만 내심 자신의 처사가 부정한 안해에 대한 미련 때문이라는 생각이 들어 쓰디쓴 쾌감을 느낀다.
'나'는 앞일을 생각하니 까마득해진다. 무엇을 해야 할 지 예산도 서지 않고 생각할 엄두도 나지 않는데, 생각마저 갈피를 잡기 힘들어 하루하루 잠으로 허송 세월을 한다. 잠을 자는 동안은 일그러진 사고에 사로잡히지 않아도 되기 때문이다.
어느 날, 절친하게 지내는 박 군이 찾아와서는 '나'의 두문불출을 비아냥거린다. '나'는 박 군에게 다방 처분한 것에 대해 시원히 말 해 버린다. 박 군은 동경에 가지 않겠느냐는 제의를 하면서 이제 마음의 방황일랑 그만큼 해 두고 정신을 차려야 하지 않겠느냐고 충고하고는 이내 '나'의 동생 순희에 대한 얘길 꺼낸다. 평소 박 군은 순희를 좋아했는데, 순희가 다른 남자를 따라 떠났다는 말을 듣고 충격을 받는다. 두 사람은 말 없이 술잔을 기울이다가 원인 모를 불안을 느끼며 밖으로 나와 거리를 거닌다. 그러다가 박 군이 별안간 고함을 치며 순희를 사랑했었다는 고백과 함께 뛰어 달아나 버린다. '나'는 박 군의 심정을 헤아리며 평소 박 군이 자주 가는 바(bar)를 찾아 간다. '나'는 테이블에 엎드린 채 잠이 든 박 군을 귀엽고 불쌍하게 생각하며 생활의 우울을 느끼다가 잠을 깨어 보니 '나'와 박 군은 어제 팔아치운 가겟방 한구석에서 잠을 자고 있었다.
곰곰히 생각해 보니 박 군을 데리고 온 것이 '나'이고 불도 때지 않은 맨바닥에서 넋두리를 하다가 잠이 들어 꿈을 꾼 것이라고 여겨진다. '나'는 언뜻 방바닥의 온기를 느끼고는 누군가가 불을 때어 주었다는 생각을 하면서 다시 잠 속으로 빠져든다.
'나'가 다시 잠에서 깨어났을 때, 언제나 경직된 표정의 어머니가 머리맡에 앉아 있었다. 어머니는 매정한 태도로 누이동생 순희가 만주로 달아났음을 알려 주었다. 나는 묘한 갈등을 느끼며 문득 육친에 대한 애정을 느끼고 콧날이 시큰해진다. 그러나 어머니의 무정한 거절에 그만 뒤통수를 얻어맞은 듯한 아뜩함을 느낀다. 어머니가 가고 난 후, '나'는 갑자기 무서움을 느끼면서 죽은 듯이 자고 있는 박 군을 무작정 흔들어 깨웠다.
정인택(鄭人澤: 1909- ? )
서울 출생. 1930년 <매일신보>에 <나그네 두 사람>을 발표하여 등단. <매일신보>, <문장>지 기자 역임. 월북 작가. 초기 작품들은 이상(李箱)과 가까웠던 관계로 심리주의적 경향을 지녔으나, 그 후 그는 무기력한 지식인과 소시민의 삶의 세계를 그렸으며 친일적인 경향을 띤 작품을 쓰기도 했다.
주요 작품으로는, <우울증>, <시계>, <향수>, <촉루>, <청포도>, <착한 사람들>, <연련기(戀戀記)>, <여수(旅愁)>, <단장(短章> 등이 있다.